
서늘한
“야, 집에 가자.”
대차게 양호실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박우진은 이불을 푹 덮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약 먹고 잠이 깊게 들었나 싶어 등도 두드려보고 우진아 하고 간지럽게 불러도 봤지만 색색거리며 뜨거운 숨만 내쉴 뿐 감긴 눈이 뜨일 줄을 몰랐다. 어차피 내일 학교도 안 가겠다, 양호실에 우리뿐이겠다, 좀 더 자게 두기로 했다.
아침부터 상태가 좋지 않은 걸 어렴풋 눈치 채고 있었지만 아픈 티내기를 싫어하는 성격 탓에 꾹 참고 있는 것 같아 등 떠밀어서 양호실로 보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오늘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내내 끙끙 앓기만 하다가 병을 더 크게 치를 것 같았다. 자기가 티를 안 내고 있으니 아무도 모를 거라고 완벽하다 생각했겠지만 하루 종일 박우진 보는 것만 할 줄 아는 내 눈에는 숨길래야 숨겨질 수 없었다. 너 아파 보여. 하는 말도 그냥 늦잠 자서 그렇다고 에둘러 말하는 성격 역시 나만 아는 것들 중 하나였다.
1학년 때 짝꿍이었다. 3학년이나 된 지금까지도 이 연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3년 내내 같은 반이라서 그렇다는 것 외에는 설명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이유로 설명 할 수 있었지만, 박우진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가 3년 내내 같은 반이어서 친할 수 있었다. 걔 옆자리는 자처 할 수 있었던 것도,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수학여행 가는 버스 안에서 같이 앉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래서였다.
작년 봄까지만 해도 우리는 다른 애들하고 별 다를 것 없는 사이였지만 천천히 나 혼자 가진 심경의 변화 때문에 별 다른 사이가 되었다. 유별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아파서 조퇴하고 집에 먼저 온 날, 나 대신 숙제나 가정통신문 따위를 챙겨 우리 집 문을 두드리던 얼굴이 기억에 깊게 남았었나 뭐 그랬다. 정확히 기억 안 날만큼 어설픈 시작이었지만 꽤 오래 가는 마음이었다. 실은 금세 사그라들 줄 알아서 크게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은 그 문을 열면서 절대로 몰랐을걸.
담배를 피우는 게 어떤 기분인지 잘은 모르지만 박우진을 보고 있으면 한 번쯤은 입에 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른들이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한 대씩 태우고 나면 꼭 속이 시원해진 것처럼 굴던데. 바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뒀던 볼펜을 꺼내 입에 물었다. 왜 내가 가지고 있는지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만 이것도 박우진 필통에서 나온 검정색 싸인펜이었다. 내내 다물고 있던 입을 벌려 펜을 이로 깨물어 물자 턱이 아렸고,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맑은 숨이 드나들었다. 양호실 벽에 붙은 거울로 얼핏 본 얼굴이 꽤나 잘 어울렸다. 그 낭창한 펜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영화 주인공처럼 멋드러진 표정도 한 번 지어봤다. 그렇게 털어봐야 떨어질 것도 없는 펜 끝을 툭툭 치며 깊게 마시고 내쉰 숨에 속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해롭지 않은 걸로 해로운 짓을 하고 있으려니 누가 보면 같잖다 여기겠지만, 그만큼 답답했다고 이해를 바라고 싶었다.
박우진이 고백 받았다고 자랑하던 날이 있었다. 당연하게 우울하고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거절을 하고 오기는 했지만 걔는 박우진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도 하던데, 나는 그 쉬운 말이 어려워서 이렇게 까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왜 거절했어?’ 라고 묻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혹시나 내가 가진 마음을 들키기라도 할까봐 한껏 조심스럽게 물었다. 박우진은 그때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에 잇자국을 내면서 말했다. ‘나는 안 좋아하는데 사귄다고 하면 너무 나쁘잖아.’ 그 말을 듣고 있던 순간에는 내가 그 꼭 나무 막대라도 된 것처럼 속이 콕콕 쑤셨다. 그치, 나쁘겠지.
차라리 그때 걔랑 사귄다고 했으면 이만치 마음 고생을 하지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사귀었으면, 나는 절대로 희망도 가망도 없는 사람이 될 테니 포기가 쉬웠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박우진과 붙어 다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옆구리에 달라붙은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그 모든 상황에 있어 나는 ‘예외.’ 일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사람을 미련하게 만들었다. 걔는 아니라도, 나는 좋아 할 수도 있잖아. 뭐, 그런. 그래서 완벽하게 포기하지 못하는 그 0.0001 퍼센트의 희망 때문에.
“몇 시야….”
“깼냐.”
잔뜩 잠긴 목소리에 나는 친절하게도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며 지금 시간을 보여줬다. 와, 존나 오래 잤네. 하며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내가 아는 박우진이 맞는데 나는 눈에 꼭 뭐가 끼인 것처럼 영화나 드라마 속에 한 장면처럼 느릿하게 보였다. 나도 진짜, 나다. 싶어 눈을 부비는데 박우진은 그저 무던하게 한 마디 한다.
“먼저 집에 가지 뭐하러 기다렸냐.”
“얼마 안 기다렸어.”
“시간 늦었잖아.”
변명도 변명으로 통하지 않았다. 아직 약기운이 남아서 그런지 반쯤 감긴 맑게 눈이 뜨일 줄 몰라하는 것 같아서 정수기에서 물을 떠다 줬다. 좋아하니까 하는 행동이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친구 사이에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편협한 시각 속의 이유를 대며 컵을 내밀었다. 그래서 박우진도 별 다른 기색 없이 물을 꼴깍꼴깍 받아 마셨다. 가자, 집에.
다 늦은 시간에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박우진이랑 나란히 가르고 있다는 사실이 좀 간지러웠다. 축구하던 애들도 다 집에 가고 텅 빈 운동장을 채우고 있는 건 나랑 박우진이 걸으면서 내는 발걸음 소리뿐이었다. 자박자박. 아직 감기가 다 떨어진 게 아닌지 옆에서 가끔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빨리 들여보내고 싶어서 택시 탈까? 하고 물으면 됐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병원 안 가도 돼?”
“어, 그 정도는 아냐.”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내가 자기 이마를 뚫어져라 보는 게 이상했는지 박우진의 손이 먼저 닿는다. 쫌만 빨리 생각할걸. 아쉬운 마음에 물기 어린 머리카락 끝만 좇는다. 축구 신나게 하고 젖은 머리랑 같았어도 아파서 젖은 거라 마음이 쓰이긴 했지만 손댈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저녁 먹고 들어갈래?”
“나 그냥 빨리 집에 가서 더 잘래.”
아픈 걸 알면서도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 한 말이었지만 거절당하기 전까지는 ‘저녁 먹을 정도는 되지 않을까.’ 했던 마음이 거절을 당한 뒤에는 ‘우진이 아프잖아.’ 하고 홀로 자책하게 만든다. 박우진의 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고요한 운동장을 가르는 내 머릿속만 이렇게나 복잡하고 요란스러운 게 조금은 억울했다. 싸악 씻겨내려가면 좀 나을까. 텅 비어봤자 다시 박우진으로 채워질 공간이었다. 손잡고 나란히 걷거나, 마주 보고 앉아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얼굴을 구경하거나, 같은 이불 아래에서 잠이 들거나. 이뤄질 순 없을 테니 그냥 한 번 해 보는 상상들로 가득 채워질 공간.
같이 보낸 건 두 번뿐이지만, 해가 길어지는 여름을 좋아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때라면 그게 몇 시였든 박우진하고 오래 있을 수 있었으니까. 박우진의 감기를 시작으로 밤이 짧아지는 가을이 다가오는 게 실감이 났다. 작년 이맘때에도 감기에 걸렸던 걸 생각하니 정말로 그랬다. 사사로운 것까지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묻는다면, 작년에도 여름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던 때가 있었으니까.
학교에서는 우리 집이 더 가깝지만 10분정도 더 가는 박우진의 집까지 가기를 자처한다. 먼저 들어가라고 밀어내는 게 때마다 섭섭하지만 오늘은 ‘너 아프잖아.’ 하는 핑계를 댈 수 있어 다행인지 아닌지. 어제는 ‘위험하잖아.’ 하는 핑계를 댔다. 박우진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가려면 한적한 큰 길을 빙 돌아서가거나 차가 쌩쌩 달리는 좁은 길로 가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박우진은 더 빨리 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더 좋아했다. 나는 그래서 위험하다는 핑계로 박우진의 뒤에서 걸을 수 있었다.
뒤에서 보는 박우진의 모습은 누구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 누구나 중에 섞여 들어가기는 죽어도 싫어서 좁은 길로 가느라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걷는 뒷모습은 나만 볼 수 있는 거라고 여겼다. (솔직히 우긴 쪽에 가까웠다) 앞에서는 기침 소리만 간혹 들렸다. 확실히 아프긴 아픈지 오늘은 말도 별로 없었다. 근데 나는 그것도 좋아서 뒤에서 차가 오든지 말든지 동그란 뒷통수만 내내 눈에 담았다.
좁은 길을 다시 되돌아가려면 똑같이 위험하지만 박우진은 내 고집도 그냥 다 들어줬다. 좁은 길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나무까지 지나고 박우진은 입구에서 비밀번호를 꾹꾹 눌렀다. 덜컹거리는 자동문이 열리고 ‘나 들어간다.’ 하는 목소리가 허공에 흩날렸다. 글자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자음과 모음이 전부 다 분해돼서 날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흘리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아쉬워서 박우진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지훈아….”
“….”
“자꾸 티 내지 마라.”
무슨 말인지 안다. 친구 관계라도 계속 유지하고 싶으면 이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말인 것도, 잠긴 목소리에 잔뜩 뭉개진 발음으로 할 만한 차가운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얽힌 손가락 사이로 박우진의 손이 간지럽게도 빠져나간다. 힘 줘서 잡아 볼 수도 없는 처지가 가련해서 시간이라도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지만, 야속하게 비어버린 손바닥은 여운을 느끼기도 전에 차갑게 달아오른다. 자동문은 닫혔고 박우진은 그 안으로 사라졌다. 더는 쫓아 갈 수가 없었다.
그런 올해 여름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더웠다는데, 그랬었나. 모르겠다, 나는. 내 여름은 늘 서늘하기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