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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데뷔

 

2점차로 리드하고 있는 9회 말 원아웃, 주자는 1루. 우진은 그때 처음으로 프로 마운드에 올랐다. 작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구단에 입단을 했고 이번 시즌이 개막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1군에 등록이 되었고 또 얼마 가지 않아 데뷔전을 갖게 된 것이었다. 우진은 생각보다 덤덤하니 떨리지 않아 오히려 당황했지만 정신을 붙잡고 포수의 사인을 기다렸다. 그리고 단숨에 고개를 끄덕인 우진은 제 오른손 안에서 빙빙 돌고 있는 공을 꽉 쥐었다. 작게 숨을 뱉어내며 호흡을 정리하더니 역동적인 몸짓으로 공을 포수의 미트에 꽂았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이 크게 울려 퍼지고 우진은 뭔가 그제야 실감이 나는 듯했다. 이제, 완전한 프로 선수가 된 것이었다.

 

우진은 그 뒤로 공을 3개를 더 던졌다. 그 4번째 공이 타자의 배트에 걸렸고 그 공은 이내 내야를 벗어나지 못한 채 병살타로 연결되었다. 첫 번째 경기, 우진은 경기를 마무리했으며 동시에 첫 세이브를 쌓아올렸다.

 

 

“김재환, 우진이 공은?”

 

“…아!”

 

 

신인투수들이 자신의 데뷔전에서 첫 아웃카운트를 잡은 공을 간직하는 것은 거의 필수에 가까웠다. 우진도 당연히 그 공을 건네받아야 했던 것이 맞았으나 꽤 중요한 경기에 병살로 경기를 끝내버려 신난 1루수, 그니까 재환이 아웃카운트를 잡자마자 그 공을 1루 관중석으로 던져버린 것이었다.

 

외야에서 내려와 곧바로 재환에게 공의 행방을 묻던 다니엘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성큼성큼 관중석으로 향했다. 우진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재환이 제게 다가와 미안하다며 내가 잠시 미쳤었다며 사과를 했지만 그에게 괜찮다며 웃어보이곤 다시 다니엘을 주시했다.

 

다니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에 넘어와 신인 때부터 지금까지 약 6년간을 주전으로 뛰고 있는 팀의 3번 타자, 우익수였다. 사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투수를 했다가 타자로 전향을 한 케이스였기에 다른 외야수들 보다 어깨가 좋아 늘 빨랫줄 같은 송구를 보여주는 것이 일상이었다. 우진은 비록 자신과 포지션은 다르지만 참 야구도 잘하고 예나 지금이나 팬서비스까지 좋은 다니엘에게 존경심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와 같은 팀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 잘 믿기지도 않았으며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상황들도 있었는데 자신이 첫 아웃카운트를 잡은 공을 찾아주고자 관중석에 직접 다가가 뭐라 뭐라 말하고 있는 다니엘에게 묘한 느낌을 받았다. 선배 선수들이 우진을 둘러싸고 축하의 말을 건네주었지만 우진은 오로지 다니엘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침내 공을 받아냈는지 다니엘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뒤돌아서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심장이 두근대는 것이 퍽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성큼성큼 다가와 어느새 우진의 바로 앞에 선 다니엘은 공을 건네며 웃어보였다.

 

 

“데뷔, 첫 아웃카운트, 첫 세이브. 다 축하해, 우진아.”

 

 

그리고 축하의 말과 함께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다니엘에 우진은 두근거리던 심장이 금방이라도 펑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귀는 벌써 붉게 물들었으리라. 우진은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그 공을 받아들며 고개를 푹 숙였다.

 

간질간질한 것이 금방이라도 꽃을 피워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두 번의 가을

시작과 끝 - 립스

 

 

01. 우승

 

우진은 그 데뷔전 이후로 몇 차례 더 마운드에 올랐다. 중간계투로 나와 홀드를 쌓은 적도 있었고 데뷔전 때처럼 세이브를 쌓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경기에 나섰을까, 팀은 상승세를 타고 쭉쭉 올라가 정규시즌의 1위를 차지했고 흔히 가을야구라고 하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우승을 하며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우진은 그때가 될 때까지 여전히 1군에 붙어있었으며 그러니 우진도 엄연한 우승멤버였다.

 

폭죽이 펑펑 터지고 위닝팀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펄럭이고, 선수들은 메달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모두가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

 

 

“저, 메달 못 받았는데.”

 

 

우진은 그 상황에서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목에 메달을 걸고 기뻐하고 있었으나 우진 혼자만, 메달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우진은 지나가던 관계자를 붙잡고 제 메달은 어디 있는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 메달이 하나 부족해서요. 며칠 뒤에 따로 받으실 거예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분명 우승의 순간에 목에 거는 메달과 나중에 거는 메달의 느낌은 천지차이일 것이 당연했다. 대답을 끝으로 저를 지나쳐 이미 멀리 걸어 가버린 관계자에게 이게 말이 되냐며 따지기라도 하고 싶었으나 고작 이제 1년차인 신인 선수일 뿐인 제가 뭐라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아쉬운 마음에 손만 꼼지락거리며 시무룩해 있자 다니엘이 그런 우진에게 다가왔다.

 

 

“우승 축하해 우진아.”

 

 

그 말과 동시에 다니엘은 제 목에 걸려있던 메달을 우진에게 건넸고 우진이 멀뚱하니 가만히 있자 그의 목에 직접 메달을 걸어주었다. 우진은 그 순간 제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멈춰버린다던가 아니면 너무 뛰어서 제 가슴을 뚫고나와 다니엘에게 돌진 한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제 가슴 속에서 펑! 하고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만큼 불규칙하고도 요란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 이유가 우승의 기쁨 때문인지, 우승의 순간에 건 메달 때문인지, 그 메달을 건네준 다니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저를 향해 웃어주는 다니엘에 우진은 순식간에 얼굴을 붉혔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맨 후자의 이유가 아닐까.

 

부정할 수 없는 짝사랑의 시작, 우진은 우승의 순간 또 다른 기쁨, 또 다른 감정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제부터 가을이 가장 좋다고. 그만큼 이번 가을은 우진의 길지 않은 인생 중 최고의 계절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02. 스프링캠프

 

우승 후 시간은 참 빠르게 흘렀다. 추웠던 한겨울이 지나고 봄이 조금씩 찾아오고 있을 때 팀은 한국보다 더욱 따뜻한 나라로 스프링캠프를 떠났다. 사실 우진은 해외로 나가는 것이 제 인생에서 딱 두 번째였다. 작년 스프링캠프는 어쩌다보니 참여하지 못했으며 고등학생 때 유소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한번 해외에서 경기를 뛰어본 게 다였고 사실 그것도 경기만 뛰고 돌아와 제대로 된 해외구경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스프링캠프는 호주로 간다했기에 우진은 남몰래 기대아닌 기대를 참 많이 하고 출국길에 올랐다. 물론 이번에도 주목적은 훈련이었으나 분명 여기저기 구경할 시간이 주어질 것이었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들었으니.

 

누구보다 들뜬 우진은 호주에 도착해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버스 창밖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별로 볼 것도 없는 그냥 길거리일 뿐이었지만 우진은 작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호주 관찰에 열을 올렸고 그 모습에 건너편 앞자리에 앉은 다니엘은 피식 소리를 내며 웃어보였다. 덕분에 우진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구경을 그만두었고.

 

그리고 얼마나 더 갔을까, 버스는 숙소에 도착했고 우진은 제 짐을 낑낑거리며 옮겼다. 짐을 어찌나 많이 챙겨왔는지 제 몸만 한 가방에 캐리어, 장비를 챙긴 가방까지, 오버했다면 오버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양이었다. 그와 달리 다니엘은 참 적은 짐을 챙겨왔다. 사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랬다. 그냥 적당한 크기의 캐리어 하나, 그리고 장비가방. 다니엘은 힘들어 보이는 우진을 힐끗 보다가 제 짐을 빨리 옮겨버리고 그를 도왔다.

 

 

“도와줄게.”

 

 

우진은 제 어깨에 들쳐 메어져있던 가방이 어느새 다니엘의 어깨로 옮겨진 것을 확인하고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괜찮다고 말하려했으나 그 짐들을 저 혼자 들기에는 무리인 것이 사실이었기에 그저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우진의 방에 짐을 내려준 다니엘은 그럼 쉬라며 우진의 머리를 톡톡 쓰다듬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행동에 우진은 돌처럼 굳어 있다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다가 옆에 놓인 침대위로 그대로 엎어진 우진은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에 휙 고개를 들었다.

 

 

“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우진이 한 말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작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입단했다는 선수였으며 즉, 우진의 1년 후배인 선수였다. 나이도 한 살만 어리고 입단도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사이에 선배님이라는 호칭은 어색해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으나 우진은 익숙해져야한다고 생각해 딱히 호칭을 바꾸라든가 와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 후배가 우진의 방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룸메이트’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국 며칠 전 코치님들이 방을 배정해 주었으며 2인 1실로 구성이 되었는데 우진은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선배 선수와 같은 방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후배와 배정이 되어 괜히 아쉬워했었다. 사실 선배와 쓰는 것보다 후배와 쓰는 것이 편한 것은 누구나 똑같기 때문에 코치님들이 일부러 우진을 생각하는 마음에 방 배정을 이리 해주신 것 같았지만 우진은 편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속으로 다니엘과 방을 쓰길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조금은 만족하는 것이 바로 옆방이 다니엘과 다른 선배가 쓰는 방이었다.  우진은 그 점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가 진행될 동안 우진이 바라던 상황-다니엘과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것-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다니엘은 야수 조에 우진은 투수 조였기 때문에 단체훈련을 제외하고는 훈련장에서 보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보니 숙소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조금씩 차이가 있어 숙소에서 마주치는 일도 드물었다. 이렇게 별 소득 없이 스프링캠프가 끝나는 것인가 싶어 괜히 시무룩해지던 우진이었으나  다니엘의 제안으로 곧바로 미소를 되찾았다.

 

 

“우진아, 밥 먹으러 가자.”

 

 

우진은 자신에게 제안하는 것이 맞는지 처음에는 헷갈렸으나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똑똑히 들었기에 멍하니 있던 정신을 붙잡고 다니엘을 따라나섰다. 물론 단 둘만의 식사는 아니었으며 우진의 룸메이트인 후배와 다니엘의 룸메이트인 선배도 함께한 4인의 식사였다. 그래도 우진은 이것에 만족했다. 훈련장 근처의 맛집이라고 알려진 식당에서 다니엘의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이었다. 그 덕인지 다니엘은 이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봐라 우진을 참 많이도 챙겼고 우진은 쉴 새 없이 그 음식들을 제 입으로 가져갈 뿐이었다.

 

우진 혼자 정신없었던 식사가 끝나고 우진과 다니엘을 포함한 네 명은 곧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밥도 함께 먹었으니 이제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싶었던 우진은 그 생각을 얼마 가지 않아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 날 후로 둘에게 별다른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진만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03. 두 번째 시즌

 

그리고 스프링캠프에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범경기가 시작되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시즌이 개막했다. 우진은 비시즌 기간 동안 확실하게 실력이 오른 덕에 개막전의 중간 계투로 투입이 되어 공을 던졌으며 깔끔한 피칭을 해내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우진은 뿌듯한 표정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와 덕아웃으로 향했고 그러면 다니엘이 그런 그를 반기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다니엘에 우진은 시즌 첫 등판이 어느 부분에서도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개막전을 치르고 나니 정규리그는 눈 깜짝할 새에 후반부를 달리고 있었다. 10개 구단의 순위가 어느 정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우진의 팀은 작년과 같이 어김없이 1등을 차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기량이 발전한 선수들이 많았기에 팀의 성적은 작년보다 더 좋아진 상태였고 이대로라면 당연히 가을야구의 진정한 승자를 가리는 게임의 최종보스로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매직넘버 8. 그니까, 정규리그 1위 확정까지 남은 승리 횟수가, 8회였다.

 

 

 

04. 두 번째 가을

 

이변은 없었다. 우진과 다니엘의 팀은 다시 한 번 정규시즌의 정상에 올랐고 이제는 또 한 번의 가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번에도 통합우승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팀에 힘이 될 수 있을까. 우진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작년보다 더 긴장되는 느낌에 저를 안정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장은 쿵쾅거렸고 그 떨림은 통합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는 경기를 뛰면서도 지속되었다.

 

감독님의 부름으로 인해 마운드에 오르면서도 우진은 좀처럼 긴장을 가라앉히지 못했으나 오히려 마운드에 서서 포수를 바라보니 안정감이 드는 느낌이었다. 서서히 굳어있던 어깨가 풀리고 심장의 박동 수도 제 템포를 찾아가자 우진은 고개를 들었다. 포수의 사인은 직구였다.

 

 

#

 

 

그리고 우승을 했다. 앞서가던 우진의 팀은 끝내 점수를 내주지 않았고 다시 한 번 목에 메달을 걸 수 있었다. 폭죽이 터지고 샴페인이 터지고 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렸다. 작년과 달라진 것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한 번에 메달을 걸었다는 것. 우진은 제 목에 걸린 메달을 많은 생각에 잠긴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엔 메달 잘 걸었네. 다행이다. 축하해, 우진아.”

 

 

잠시 후 우진에게 다가온 다니엘이 한 말이었다. 미소를 가득 머금은 얼굴로 우진에게 그리 말하는 다니엘은 우진이 그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딱 작년의 이맘때, 우진에게 메달을 걸어주었던 다니엘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보였고 우진은 심장이 조금 쿵쿵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활짝 웃는 것도 잊지 않고.

 

 

 

05. 이별

 

통합 우승으로 인해 우진은 인생 최대의 기쁨에 잠겨있었으나 그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아 근심으로 물들었다. 그 원인의 제공자는 강다니엘이었으며 구체적인 원인은 강다니엘이 떠날 수도 있다는 것, 그니까 이번 시즌이 끝나자 자유 계약이 가능한 몸이 된 다니엘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아니면 다른 나라 리그까지도 도전이 가능한, 그런 상황이었다.

 

우진은 처음에는 그가 당연히 팀에 남겠거니, 하고 생각했었으나 언론의 흐름을 보니 어쩌면 그가 이곳을 떠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다니엘은 늘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대답을 피하곤 했다. 그런 그의 대처에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은 팬들 뿐만이 아닌 우진도 마찬가지였고 그래도 아니겠지, 아니겠지. 스스로 저를 달랬지만,

 

⌜[단독] 강다니엘, 메이저리그 행. 계약 위해 이번 달 출국⌟

 

그 소식은 참 뼈아팠다. 어쩌면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맞겠지만 그래도 갑작스러운 소식이었기에 그 여파는 상당했고 결국 우진은 조금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실은 많이, 많이 울었다. 제 마음을 고백 한번 못해보고 다니엘을 떠나보내게 생겼으니 당연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울한 상태로 며칠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다니엘이 떠나는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구단에서 진행하는 팬미팅 행사를 위해 오랜만에 선수들은 모두가 야구장에 모였다. 당연히 우진도 참석했으며, 다니엘 또한, 얼굴을 보였다.

 

팬 행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행사 시작 전, 다니엘은 락커룸에 있는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었으며 감독님, 코치님, 트레이너님 모두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우진은 다니엘을 볼 자신이 없어 그저 서성이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다니엘의 눈에 들어오고 말았고,

 

 

“우진아.”

 

 

결국 다니엘은 우진의 이름을 불렀다.

 

 

“잘 지내고, 형 보고 싶을 때 연락해.”

 

 

그리고 이어진 다니엘의 말에 우진은 그러면 하루에 한번은 연락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자 다니엘은 마지막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끝내 뒷모습을 보였다.

 

아, 끝이구나. 가을에 시작되었던 이 지독했던 짝사랑은 그냥 이렇게 다음 해의 한겨울이 되어서야 끝이 나는 구나.

 

우진은 씁쓸한 감정을 참지 못했고 충분히 흘렸던 눈물이 다시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두 번의 가을은 참 달콤했지만 마지막으로 찾아온 겨울은, 우진을 참 쓰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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