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윙참] 첫 눈, 그리고 첫 키스 아닌 키스
w. 노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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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추워.”
“그래서 오지 말라고 했잖아.”
“와줘도 난리냐, 넌.”
꽁꽁 얼어붙은 박우진의 귀를 매만져주며 나는 최대한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안면근육을 경직시키는 바람에 표정은 딱딱하기 그지없었겠지만 뜻은 대충 전해졌으리라. 그렇게 믿으며 한겨울에 눈 온다고 마중 나온 박우진의 얼굴을 보았다.
‘나 추워요’ 하고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써놓고 있던 박우진은 좁히고 있던 미간을 풀더니 씩 웃었다. 뿅 튀어나오는 덧니가 귀여움을 한층 더하는 것 같다. 덩달아 미소 짓게 만드는 웃음에 표정관리가 되질 않는다.
허공에서 하얗게 흩어지는 입김이 로맨틱하게 느껴진다면 오늘의 나는 감정과다의 상태임이 분명하다. 암, 그렇고말고. 그렇지 않고서야 저 까만 애가 귀엽게 보일리가. 팔에 끼고 있던 3단 우산을 척 꺼내더니 득의양양하게 웃는 모습조차 귀엽다. 음, 역시.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나까지 미쳤나봐. 찬 공기를 들이마시면 번쩍 정신을 차려야 될 텐데, 이상하다. 날씨가 이상하니까 나까지 이상해지나.
“야, 넌 이 몸이 이 새벽에 눈보라를 뚫고 마중을 나오셨는데. 고맙다고 낑낑거려도 봐줄까 말까한 거 너 알아, 몰라?”
“어련하시겠어.”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을 해야 알지~”
“춥잖아. 감기 걸려.”
“그래서 고맙냐고 안 고맙냐고.”
“고마워서 콧물 날라 그래 지금.”
미친놈아 눈물이 아니고? 응. 시답지 않은 농담 따먹기로 언 입을 좀 풀었다. 아깐 춥다고 이를 달달달 사정없이 부딪힐 땐 언제고, 톡 튀어나온 입으로 생색내기에 여념이 없다. 제가 곧 죽어도 고맙다고 말을 안 하자 요 부리가 또 나온다. 박참새 또 입 튀어나오지. 그런 놈을 보면서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칭찬해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나는 박우진의 머리를 손으로 잔뜩 흐트러뜨렸다. 밖에 오래 있었던 모양인지 머리카락이 차갑다. 그러게 오지 말라니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이건 이거다. 이 추운 날 왜 나와, 감기 걸리게.
“나 배고파.”
눈을 가늘게 뜨며 웃던 박우진이 대뜸 ‘나 배고파’란다. 너 저녁에 치킨 1마리에 밥 두 공기 다 먹은 애 맞냐? 뱃속에 거지새끼 몇 명을 들인 건지 가늠이 안 된다니까. 내 말에 지는.하면서 툴툴거리는 박우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주변에 편의점이 있나 눈을 빠르게 굴렸다. 딱히 박우진의 말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조금 출출한 것 같기도 해서.
“편의점. 들러?”
덧니가 보이도록 환하게 웃은 박우진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사는 거지?”
“...너 이러려고 왔지?”
“그런 셈 치자.”
히히거리는 얼굴 옆에 귀가 빨갛다. 얼마나 밖에 오랫동안 있었던 거야. 손이 시린지 점퍼 소매 속으로 자취를 감춘 손도 똑같은 모양새일 것 같아서 괜히 미안했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머릿속에서 지금이 기회라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모른 척했다. 놀라서 이 새벽에 우산 가지고 도망가면 안 되니까. 이 밤에 손수 나온 박우진의 고생을 헛수고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눈 맞으면서 걸으면 안 돼?”
“그럴 거면 왜 우산 들고 왔는데.”
“그야, 너 눈 맞는 거 싫어하니까.”
“그런데 지금 나한테 눈 맞으면서 걷자는 건 무슨 의도이십니까, 박우진 씨?”
“낭만도 없는 새끼.”
춥지도 않나. 얼어 죽을 낭만을 여기서 찾네. 첫 눈이라는 건 참 대단하다. 평소에 낭만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장난에 죽고 사는 놈의 입에서 낭만을 꺼내게 만들었으니. 가끔은 저 변덕에 맞춰주는 것도 신선하다.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박우진은 아싸! 하는 소리와 함께 제가 들고 있던 우산을 접었다. 우산을 접자 천천히 내리는 눈들이 머리에 와닿았다. 빨갛게 얼어버린 손을 주머니에 쿡 찔러 넣으며 우리는 아무도 없는 새벽 눈길을 밟기 시작했다.
차가운 골목길을 가로등만이 지키고 있는 그 길 위에서 박우진과 나는 흔적 없는 새하얀 눈길을 좋다고 밟아댔다. 눈 오는 거, 그리고 눈 맞는 거. 그거 참 싫은데 오늘은 썩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눈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소리가 있긴 한가 싶을 정도로 조용히 내리는 게 눈인데, 기이하게도 오늘따라 소리가 들렸다. 조용하게 눈이 쌓이는 소리가 박우진의 숨소리와, 경쾌하게 걷는 발소리와 함께 들렸다. 기분 좋은가보네. 그렇게 한 십 분을 걸었을까. 우리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며 눈을 마주쳤다.
그러니까… 더럽게 춥다.
손, 발, 귀 어디하나 안 시린 곳이 없었다. 칼바람에 혹사당한 양 뺨이 얼얼할 지경이다. 좋은 건 딱 십 분이었지 박우진도 춥다며 앓는 소리를 냈다. 서로 그렇게 추위를 받아내며 귀퉁이에 자리한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게이커플 눈사람 꼴이었다.
“아 진짜 추워... 따뜻한 거 먹을 거야.”
나는 계획한대로 박우진에게 온장고에서 레쓰비를 꺼내주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따뜻한 거 먹겠다던 놈이 집어든 건 고열량 고칼로리, 초코바였다. 뻘쭘하게 들고 있던 캔커피는 내 몫이 되어 버렸다. 계산하고서 편의점 구석에서 몸이 녹을 때까지 밍기적댔는데, 손이 말랑해지기도 전에 알바의 눈총에 밖으로 슬그머니 나왔다.
“우산 줘, 내가 들게.”
“키도 나보다 작은 게 까불어. 이 형님이 들게.”
“키 얘기 하면 죽는댔지.”
“친히 오늘 같은 날 데리러 오신 이 몸을 네가 칠쏘냐!”
“길바닥에서 밀어버리는 수가 있어 진짜.”
박우진은 꼭 일 다 잘해놓고 저 입을 잘못 놀려서 점수를 까먹곤 한다. 키로 놀릴 건 다 놀리고 조금이라도 화난 티를 내면 저렇게 잔뜩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낑낑거릴거면 애초에 놀리질 말지. 박우진이 아니라 다른 놈이었으면 벌써 욕 한 번은 날렸을 것을 그저 우산을 뺏어드는 것으로 대신했다.
미안해죽겠다는 표정으로 아 미안해 지훈아아, 장난이야 응?하면서 되도 않는 - 사실 나한테는 조금 통했다. 별로 화 안났는데 매번 이거 보려고 화낸 척하는 걸 얜 평생 모를 거다 – 애교를 부린 박우진은 우산을 다시 제가 들고 갔다. 나는 우산 대신 박우진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아 우산 진짜 작아. 넌 우산은 왜 하나만 들고 와서. 이렇게 좁아터지게. 우리 덩치가 그 초딩 때 분쏘단이 아니다 이거야. 너 언제까지 추억에 젖어 살래?
“야 근데 우산은 꼭 이거 하나만 들고 왔어야 했냐?”
“...뭐. 뭐가.”
“아니 그렇잖아. 우산이 집에 몇 갠데 제일 작은 3단 우산 하나 들고 와?”
“아, 뭐... 어쩌다보니까...”
“내가 쓰고 갈 우산은 챙겼어야지, 네 꺼만 챙기고. 그 정도로 생각이 없냐, 넌.”
“...생각이 없는 건 내가 아니라 너겠지, 병신아.”
“내가 뭐! 뭐가!”
“아 몰라!”
제 소리침에도 박우진은 고개 한 번 안 돌리고 시선은 정면이었다. 아 새끼. 장난 한 번 친 거 가지고 또 삐쳤냐? 삐쳤냐고 물으면 또 그건 그거대로 박우진의 화를 돋우는 일임을 알아서 나는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여전히, 고요하게 눈이 쏟아졌다. 수분이 많은 질척한 눈이라 나무 위에도 하얗게 눈꽃이 피기 시작했다. 남자 둘이 작은 우산 하나 나눠들고 바짝 붙어서 걷는 게 이제는 익숙하다. 박우진이 익숙해진 게 아닐까 싶다. 여전히 우리는 말이 없었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아무튼 편안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우진이 대뜸 입을 열었다.
“야 이런 날에 키스하는 거 아니야?”
“뭐??”
이거 이럴 때 쓰는 유행어인가. 갑분키. 갑자기 분위기 키스. 진짜 무드고 뭐고 다 개나 줘버렸구나, 박우진. 맥스 사료 떨어져서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눈치를 줘버린 거야? 아니면 뭘 잘못 먹었나. 편의점에서 먹은 거라곤 초코바 하나가 다 아니었냐, 너? 아무거나 막 주워 먹지 말라니까. 저거 초코 밥 먹은 거 아닌가 몰라... 음 그거 초코볼이랑 비슷하게 생겼잖아...
나는 황망하게 박우진을 쳐다보았다. 진짜 내가 잘못 들은 거거나 얘가 실언... 혹은 실성을 했거나 둘 중 하나다.
“가로등, 함박눈, 골목길, 우산 나눠들기.”
“엉?”
“그 다음엔 키스?”
그러니까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었고. 박우진 실언이나 실성 중에 하나인데... 박우진은 본인이 말해놓고도 기가 차고 웃긴지 푸흐, 하고 웃었다. 아 맞네, 실성. 드라마를 너무 봤어 너. 박우진이 웃은 이유도 쑥스러워서 말 돌리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눈은 웃지 못하고 있는 게 보이니까. 이거 실언은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까 지금...
“해?”
“뭘.”
“키스.”
“야 장난이지!”
박우진이 들고 있던 우산이 크게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마침 우리가 서 있던 자리에는 가로등이 있었고, 주변은 고요했다. 눈발이 거세지지도 약해지지도 않는 그런 상황이었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바로 그 상황 말이다. 자기가 말해놓고도 당황하는 박우진을 보며 나는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비웃음 당한 건 알긴 아는지 미간을 급히 좁히기에 주머니에 꼭 넣고 있던 손을 빼서 박우진의 미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인상 쓰지 마라. 존나 양아치처럼 보여.”
“누가 누구보고 양아치래! 그럼 너는...! 너는... 어? 눈만 큰 사슴처럼 생겼거든?!”
“응, 칭찬 고맙고.”
별 시답잖은 언쟁이다. 박우진의 시선이 한 곳에 가만히 고정되어있질 못하고 계속 옮겨간다. 과장 조금 보태면 초당 삼백 번씩은 바뀔 거다. 불안한 건지 어색한 건지 시선처리가 안 되는 꼴이 퍽 애처로워 보이기도 해서 나는 나 봐봐, 하고 한마디 만 했다. 거짓말처럼 박우진이 눈을 맞춰온다. 가로등 불빛에 기묘한 음영이 드리워진 얼굴이 퍽 매력적인데, 웃기게도 표정관리는 전혀 안 되고 있어서, 가관이었다. 그러니까 볼만 했다는 거다. 존나 이쁘다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런 표정.
“키스하자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싫으면 말고.”
“야!!!”
낄낄대며 왜, 하고 박우진을 봤다. 입술을 달싹이는 모양새를 보니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그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대고 싶어졌다. 아니 사실 오늘 첫 눈 온 거 보고 조금 설레긴 했거든. 그런데 딱 타이밍 좋게 박우진이 마중까지 나와서 조금은 기대도 했거든. 사실 골목길을 딱 돌아서 집 앞에서 키스를 해야 하나, 고백이 먼저일까 고민 중이었어. 그래서 말 없었던 건데. 너는 키스 생각 하느라 그랬냐?
모양 좋게 생긴 박우진의 입술이 말을 흘려보내지는 못하고 한참을 뜸을 들인다. 입술만 클로즈업 된 것처럼 내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듯싶어서 나는 헛기침을 하며 박우진 뒤에 있던 눈 쌓인 나무로 시선을 흘렸다.
“...싫다고는 안 했는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린 박우진은 입술을 약하게 깨문 채 웃었다. 표정 참 다이내믹하다. 있어 봐봐. 나는 거리를 좁혀 박우진과 가깝게 마주보고 섰다. 의외로 긴장된다. 분명히 첫 키스는 아닌데 첫 키스 같은 느낌. 생각 외로 간단한 건 아닌 것 같아 뜸을 들이고 있는데 박우진이 우산을 들지 않은 손으로 날 채근하듯 내 어깨를 잡았다. 이 추위에 눈밭에서 키스하리라곤 상상도 못해봤는데.
미지근한 온도로 입술이 닿았고, 아직 감지 않은 박우진의 눈을 보면서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눈을 감겼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보다가 나도 눈을 감은 채 박우진의 입술에 조심스럽게 입을 갖다 댔다. 아까 박우진이 먹은 초콜릿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밑입술을 약하게 빨다가 혀를 내밀어 두드리듯 그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저항 없이 벌어지긴 했지만 약간의 떨림이 묻어나오는 듯싶었다. 뒷머리를 가볍게 감싸 쥐고 치열을 핥으며 혀를 얽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박우진이 정말로 우산을 놓아버린 것 같다. 양 어깨를 잡아오는 손이 느껴진다.
초콜릿처럼 달큰하게 웃던, 다정한 고동색 눈동자가 키스가 끝난 후에도 나를 보며 웃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 에필로그 – 박우진의 사정
내가 일부러 집에 있는 우산을 모조리 부러트린 걸 박지훈은 꿈에도 모를 거다. 이 사실을 알면 난 죽을지도 몰라 맥스야. 그치? 뽀각뽀각. 난데없이 멀쩡한 우산을 박살내고 있는 제 주인을 보며 왈왈!거리는 초코에 나는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고 쉬이. 조용히 해. 이 아빠 연애사업하잖아. 너 아빠가! 응? 맥스 아빠랑 잘 되는 꼴 보기 싫어? 그럼에도 왕! 짖으며 쪼르르 맥스에게 달려가는 걸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저거 박맥스한테 일러바치는 것 좀 봐. 야 박맥스 오늘은 니 아빠한테 일러바치지 마라. 이거 다 아빠들 잘 되라고 하는 거야. 응?
박지훈에게 마중가기 전 자식들에게 뽀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얘들아. 오늘 아빠들 일 잘 되면 니네 형제 되는 거야, 알지? 갑자기 이복형제가 되더라도 지금처럼만 친하게 지내라. 다녀올게!
왈왈! 그 소리가 마치 ‘아빠 화이팅!’하는 것 같아서 박지훈을 마중하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사실 오늘 눈이 오길 바라고 또 바랐다. 박지훈이 우산을 안 가져갔으니까 내가 나갈 핑계가 생긴단 말이야. 게다가 멀쩡한 우산은 단 한 개! 붙어있을 수 있게 장우산 말고 머리만 겨우 숨길 수 있는 3단 우산으로 남겨두었다. 춥고 눈 쌓여서 걷기도 불편한데 나간 것도, 편의점에서 초코바를 산 것도 전부 다 일부러 그런 거다.
좀 먼저 들이대주면 안 되겠냐. 쪽팔려서 죽을 것 같다. 벽에 밀쳐지고 폭풍키스 이런 거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남자끼리라서 그건 안 될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나를? 박지훈이? 너무 섬세하시고 세심하셔서, 솔직히 말하자면 소심하고 찌질해서 절대 그렇게는 안 하실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까지도 고백 안 하는 걸 보면 찌질이 병신은 박지훈이다. - 그리고 그렇게 못 하는 나도 결국엔 찌질이 병신이다. 깔끔하게 인정한다. 나는 인정이라도 하지! -
결국 첫 눈 첫 키스는 내 뇌 안의 판타지로만 남겨두게 되겠지. 망할! 왜 난 여자가 아니어서! 망할! 왜 여자도 아닌데 그런 걸 바라는 걸까! 그 와중에 박지훈이 날 보면서 웃는다. 마주본 채 시선을 오롯이 받아내기가 힘들었다. 이 눈 내리는 골목과 동화된 채 너무나도 멋있고 근사하게 웃어서 나는 다시 한 번 넋을 놓았다. 그거 아냐? 너 웃을 때마다 내 심장에 무리 오는 거? 알면서 하는 거지?
있어 봐봐. 나직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이미 내 심장은 목구멍으로 튀어나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떨고 있는 것 같아서 박지훈의 어깨를 덥썩 잡았다. 하려면 빨리 하던가 이 미친놈이 심장을 손에 쥐고 휘두르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나는 입술이 닿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난 거기서 한 번 더 후회했다. 눈 감았어야 했던 것 같은데! 꽉 감을까? 어쩌지? 박지훈이 눈으로 웃는 게 보였고, 그가 손을 들어 내 눈을 감겨주는 그 순간에 심장이 덜컹거렸다. 고장 났음. 삐. 삐. 삐.
정상 심박수로 돌아올 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자놀이가 아플 정도로 피가 빠르게 돌고 있는 게 느껴졌다. 박지훈을 꽉 잡느라 우산이 옆으로 툭 떨어졌다. 지금 우산이 문제냐, 널 안 잡으면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은데. 눈 맞는 거 싫어해서 우산도 내가 들었는데. 결국 맞혀서 미안하긴 한데, 지훈아. 어... 나 지금 기분 진짜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