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행
박지훈, 그리고 박우진.
내가 박우진을 처음 본 건 12월 셋째 주, 기말고사가 끝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 추운 날에 겉옷 하나 걸치지 않고서 빈 교실에 앉아 있던 박우진의 손에는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종잇장 하나가 들려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수업이 끝난 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여태 집에 가지 않고 있는 게 이상해서 창문 너머로 몰래 쳐다봤다. 날도 추운데 쟤는 안 가고 뭐 하는 거람. 그렇게 그냥 고개를 돌리려고 했었다. 놈을 지나쳐 가려고 몸을 돌리려는데 갑자기 박우진이 손에 든 종이를 마구 구겨대는 게 아닌가. 뭔가 싶어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교실 안을 바라보니 바닥으로 내팽겨친 종이에 성적표, 라는 세 글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시험을 망친 건가. 책상에 고개를 박고 있는 박우진의 어깨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인상까지 찌푸리며 집중하고 있는데 저 멀리 복도에서 진영이 놈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씨발 박지훈 책을 만들어서 오냐!!!!!!
벼락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 나자빠질 뻔해 신발장에 다리를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부딪혔다. 와, 씨발 조온나 아파. 이건 백퍼 부러졌다 씨바. 엉엉 우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파서 욕만 짓씹다 고개를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순간 박우진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아픈 것도 잊어먹을 정도로 사고회로가 정지한 상태에서 코가 벌겋게 물들어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박우진의 얼굴만 눈앞에 보이는데 정말 내가 몹쓸 짓을 한 기분밖에 들지 않았었다. 무슨 범죄현장을 목격한 사람처럼 황급히 도망쳐 나온 나는 정말 구라가 아니라 새벽 내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우는 얼굴이 자꾸 둥둥 떠다니는데 정말이지, 내가 가서 미안하다고 빌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학교는 박우진 얘기로 온종일 떠들썩했었다. 얼굴이 퉁퉁 부을 정도로 누구한테 얻어터져 왔다는 거였다. 뭐 밤에 패싸움을 하는 걸 누가 봤다느니, 건너 학교랑 트러블이 있었다느니, 쟤네 아빠가 깡팬데 어쩌고저쩌고 카더라로 난리도 아니었는데 박우진을 보진 못했지만 우리 반 애들이 그랬다. 겨울이라 얼굴만 보여서 그렇지 아마 몸에도 상처가 엄청날 거라고. 나는 하루 종일 귀에 박히도록 돌아다니는 소문들에 굳이 내가 어제 봤던 박우진을 얹어놓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박우진의 비밀 아닌 비밀을 봐버린 나로서는 그게 맞는 행동이고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다음 수업을 준비하며 펼쳐놓고 있던 전 시간 교과서를 탁 소리 나게 덮었다.
.
.
.
아니, 사실은 나 혼자만 알고 싶었다.
그날 내가 정말 의외였던 건 박우진은 학교에서 하는 행동으로 보나 검은 피어싱을 달고 매일 교복을 제대로 입지 않는 모양새로 보나 빈 교실에서 혼자 질질 짤 이미지는 아니었다는 거다. 물론 박우진은 그렇게 양아치처럼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전교 1, 2등을 다투는 천재 같은 놈이긴 했다. 그런데 나는 놈과 같은 반이 아니었으니 뭐 공부를 하는 걸 본 적도 없고 허구한 날 땡땡이를 친다는 소문만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그래서 그냥 머리가 비상한 놈이려니 했지 성적표를 구기면서까지 그렇게 울어댈 줄은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여러모로 참 아이러니 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런 박우진의 비밀을 세상 천하에 까발리지 않고 숨긴 이유는 뭐 알량한 협박이라든지 놈에게 이걸 빌미로 무언가를 얻어낼 생각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니 겨울방학이 지나고 새학기가 올 때까지 누구한테 하나 입도 벙긋하지 않았지.
그런데, 이 운명이라는 게 어찌나 이리도 절묘한지. 흔한 드라마의 서사처럼 같은 반이 된 것도 기절초풍 할 일인데 번호순대로 앉는 자리 덕분에 내 옆자리까지. 여러 모로 완벽한 운명이었다. 나는 박우진이 내 옆자리라는 걸 알고는 재빠르게 책상에 고개를 박았으나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박지훈. 하고 불리는 내 이름에 다시 자세를 고쳐 바르게 앉았다.
“쥐새끼마냥 쪽팔리게 남 처우는 거 훔쳐보기나 하고,”
“...”
“변태냐? 취향이 그래?”
이 새끼는 지금 뭔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저 비밀을 기꺼이 넓은 아량으로 숨겨줬건만. 뭐, 아량까진 아니지. 내가 훔쳐본 건 맞으니까. 괜히 머쓱해 박우진 쪽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머리만 긁적였다. 그래도 나를 변태라느니 말도 안 되는 수식어로 기억되기는 싫어 슬쩍 몸만 기울여 속삭였다.
“훔쳐본 거 아니거든.”
“그럼?”
“교실에 놔두고 간 게 있어서 가지러 가다가 우연히, 존나 우연히 본 거거든.”
“......”
“아, 아니 니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하여튼 그렇다는 거지.”
대답이 없길래 고개를 돌렸더니만, 새끼가 씨발 양아치면 다냐. 눈 부라리는 게 보통이 아니다. 황급히 수업에 집중하는 척 고개를 돌리니 박우진도 별 말 없이 칠판을 응시했다. 수업 하나도 안 듣는다더니 역시 애새끼들 부풀리는 건 알아줘야 한다. 그런데 내가 옆에 박우진을 앉혀놓고 수업에 집중될 리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간만에 떠오른 그날에 더더욱 집중하기란 불가능했다. 의미 없이 계속 박우진을 힐긋 거리며 그날 엉엉 울던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데 썅, 나 진짜 변탠가. 정신 못 차리고 왜 이래. 속으로 절규하며 죄 없는 종이를 볼펜으로 벅벅 긁었다. 한참 책에 구멍을 내면서 이짓 저짓 하고 있으니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가 또 그날처럼 눈을 마주치고야 말았다. 샐쭉한 눈꼬리가 나를 향했다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진짜 변태 맞나보네.”
“뭐... 뭔 소리,”
“내 이름은 왜 그렇게 쓰냐?”
화들짝 놀라 종이를 확인하자 무의식 속에 박우진 망할 이 세 글자를 참 많이도 휘갈겨놨더라. 나 자신도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라 쪽팔림이 한계치를 넘어섰다. 접시와 물만 있으면 바로 코 박고 뒈져버리는 건데.
찬바람이 쌩쌩부는 며칠간 옆자리에서 박우진을 지켜본 바로는 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였다. 이따금씩 눈에 거슬리는 상처를 달고 오는 것 빼고는 말이다. 하루 종일 엎드려 자는 경우도 많았지만 수업에 집중할 때가 더 많았고 땡땡이를 친다든가 수업 중간에 나가는 행동조차 없었다. 제일 의아했던 건 박우진은 흔히 말하는 질 나쁜 애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뭐 가끔 말을 섞거나 밥을 같이 먹긴 해도 그렇게 유대관계가 돈독해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놈들도 박우진을 그저 위압감을 조성하는데 이용하는 것 같았고 이렇게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친구가 없어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모두에게 똑같은 겨울도 박우진에게는 조금 더 시릴 것만 같았다.
“점심 먹으러 안 가?”
“신경 꺼.”
이러나저러나 여전히 싸가지는 확실히 없긴 하다만. 민망할 정도의 대꾸에 볼을 긁적이다 묵묵히 엎드려 있는 뒤통수를 힐긋 거리며 교실을 나섰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심성이 고왔다고 저놈이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는지는 모를 일이나 자꾸 오지랖이 들끓는데 어쩌란 말인가. 복잡하게 얽히는 머릿속에 결국 나는 이게 내 업보다 생각하며 같이 가던 친구놈들을 뒤로 한 채 교실로 뛰어갔다. 다소 시끄럽게 쾅! 소리를 내며 문을 열어젖혔지만 박우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고집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머리통을 바라보며 천천히 발을 옮겼다.
“야, 박우진.”
“...”
“같이 점심 먹을래?”
“...”
“내 친구들이랑 말고 너랑 나만....”
박우진과 단 둘이 밥 먹기를 자처한 것은 절대 내가 박우진과 함께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혹여나 놈이 내 무리에 갑자기 끼어드는 걸 불편해 할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뭐 당연히 내 친구놈들도 박우진의 악명이 있으니 불편해 할 게 뻔하고. 하여튼 모두를 배려해서 한 말이라는 거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내 의도가 아니라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내가 교실을 나선 지 고작 1분도 채 안 될 시간인데 놈이 벌써부터 곤히 잠들었을 리는 없고 이 새끼가 의도적으로 나를 무시한다는 것 말고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열 받긴 하지만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닌지라 나는 그저 박지훈의 어깨만 가볍게 두어 번 흔들었다.
야 박우,
그러자 정말 삽시간에 멱살이 잡힌 채로 끌려가 사물함에 등이 부딪혔다. 콰앙-! 하는 소리가 온 교실에 울리고 나서야 나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인지하려 애쓰며 멍청히 내 와이셔츠를 틀어쥐고 있는 박우진을 바라봤다. 부딪힌 날갯죽지가 불에 덴 듯 욱신거렸다. 미친새끼 아니야 이거? 뭐가 그리 열이 받았는지 핀트가 나간 것 같은 눈동자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분노를 가득 띄우고 있었다. 살이 아릴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조금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우리 둘 사이를 가로질렀다.
"신경 끄라고 했지. 내가 질질 짠 거 좀 봤다고 니가 뭐 된 것 같냐?"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 좀,"
"내가 밥을 처먹든 안 처먹든 너한테 동정 바란 거 아니니까 거슬리게 하지 말라고 개새끼야."
"..."
"뭘 안다고 씨발,"
이상했던 건 박우진이 들이미는 분노가 꼭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더 멍했다. 울분을 토해내며 욕을 짓씹는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게 선명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너 왜 그래 박우진. 하고 묻고 싶었는데 시근덕대던 박우진은 눈시울이 시뻘겋게 물든 채로 한 번 더 쾅! 하고 나를 사물함에 밀어붙이고는 교실을 나섰다. 목울대를 꽉 누르던 손이 풀리자 막혀있던 숨통이 그제서야 탁 트였다. 힘을 얼마나 줬는지 호흡을 못해 벌개진 얼굴은 둘째 치고 잊고 있었던 작년 그날의 표정이 눈앞에 둥둥 떠다녔다. 내가 울린 게 아닌데, 울리려던 게 아닌데 좋은 일 좀 하려다가 낭패만 봤다. 이유 모를 오지랖인 건 인정했다. 나는 그저 너무 외로워 보였을 뿐이었다. 박우진의 겨울이 너무 시리기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뿐이었다. 맹세코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때의 일이 워낙 이해할 수 없기도 했고 너무 절정부터 부딪힌지라 선뜻 박우진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서 그렇게 자주 울음 섞인 표정을 짓는지. 왜 그렇게 어둠을 늘상 끌고 다니는지. 어쩔 때는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우울이 어깨를 타고 넘어왔다. 그 검은 기운에 슬며시 고개를 돌려보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는 박우진이 시선 끝에 걸렸다. 그럴 때마다 항상 손끝이 저릿했다. 박우진에게 시선이 닿으면 묘한 기분이 머릿속을 장악했고,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뭐. 하는 무심한 목소리에 무슨 죄 지은 사람마냥 금세 시선을 치워내고 마는 것이다. 그런 나날들의 반복이었다. 딱히 박우진과 크게 부딪히는 일도 없었고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갈 때 즈음이었다. 나는 이대로 아마 박우진과 별다른 인연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좀 어디 가서 이름 한 번 꺼내면 다 아는 그런 잘사는 동네가 하나 있었다. 어쩌다 버스가 그 동네를 가로질러 갈 때면 항상 관찰하듯 살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뭐 그런 환상 따위 다 사라진 지 오래긴 했다. 그런 동네에, 그런 아파트에 사는 애들도 전부 나와 같은 또래랑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닫고 난 뒤부터였다. 유난 떠는 건 어른들이지 아이들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랑 제일 친한 진영이란 놈이 그 동네에 살고 있기도 했고. 그런데 워낙 진영이네 부모님이 엄하시기도 하고 희한하게 진영이는 지네집을 너무 싫어했었다. 그 탓에 늘상 놀러가면 우리 집에 가거나 아니면 PC방이었는데 웬일로 오늘 부모님 출장이라며 자기 집에 가자고 꼬드기길래 얼떨결에 승낙을 해버렸다. 결론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덜컥 이 동네에 발을 딛게 됐다는 말이다.
"너 진짜 웬일이냐? 적응이 안 되네."
"닥치고 오기나 해. 뭔 말이 그렇게 많냐."
배진영이 그만 물어보라는 듯 내 어깨를 퍽 하고 밀쳤다. 아, 미친놈. 왜 이렇게 세게 때려. 나는 아리는 어깨를 문지르며 투덜거리다 말고 웬 주택집 안에서 와장창 깨지는 소리를 듣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배진영도 덩달아 옆에 섰고 나는 굳게 닫힌 대문 안으로 열려있는 문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안에서는 뭘 다 때려부시는 건지 계속해서 무언가 엎어지고, 무너지고, 깨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내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안 하니 배진영이 그만 가자는 듯 내 팔을 잡아끌어댔다. 야, 저런 거 보는 거 아니야. 당기는 힘에 주춤 주춤 떼어지지 않는 다리를 움직이면서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계속해서 그 집을 뒤돌아봤다.
"저기 뭐 도둑이나 강도 든 거 아니냐?"
"원래 저래 저 집."
"진짜로?"
"엉, 몇 번이나 신고 당해서 경찰들 오고 주의 줘도 소용없더라."
"돈 많아도 저렇게들 싸우는 구나. 진짜 다 부질없다."
"저기 걔 살잖아."
"누구?"
"니 짝."
"..."
"박우진.”
끊어졌다고 생각했던 운명의 실타래가 여전히 묶여있음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박우진이 여기 산다는 건 전혀 몰랐었다. 허나 내가 박우진에게 더 시선이 갔던 수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동질감이라는 감정이 어렴풋하게 섞여있었다. 어쩌면 드라마의 그 흔한 서사를 내 자신이 바랐는지도 몰랐다. 뭐 한부모 가정이라거나 아버지가 어떻고 어머니가 저떻고 집안이 기울고... 그건 아마도 평범보다 조금 더 힘들게 자라온 내 바람이었으며 스스로가 한심스러울 정도로 못된 심보였음을 인정했다. 내 불행을 박우진과 함께하길 원했다. 비록 내 예상과는 다른 불행이었지만 남보다 돈이 많다고, 저렇게 커다란 집에 산다고, 번쩍거리는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 척 해댔다.
나는 배진영 집에서 무슨 술인지도 모를 것들을 잔뜩 들이켰다. 웬일로 자기집에 날 데려가나 싶었더니 목적이 이거였다. 앉을 새도 없이 제 팔뚝만한 병을 들고 오더니 시험 삼아 아버지 몰래 빼돌려놨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모르더라 이거다. 나야 여기 저기 끼어서 친구놈들하고 몇 번 마셔본 적이 있지만 진영이 놈은 오늘이 처음이라며 잔뜩 신나있었다. 그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다 싶더니 씨발. 와이셔츠를 풀어헤친 채 뻗어버린 배진영을 바라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조절하라고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귓등으로도 안 들어처먹는다. 소파 위로 뜯지도 않은 과자봉지를 밀어내고는 가로로 길게 누웠다. 그래도 술은 술인 모양인지 새하얀 천장이 빛을 따라 이리저리 일렁였다.
배진영은 박우진에 대해 이미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쭉 여기서 살았다는 배진영은 박우진을 무려 유치원 때부터 봤다고 했다. 그때도 박우진은 대부분 혼자였다고. 정작 저는 박우진에게 관심도 없었는데 우연히 제 어머니가 손님하고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박우진이 입양된 아이라고 했단다.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고 그쪽 두 부모 사이가 더럽게 안 좋다는 거. 애를 입양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는 거. 박우진은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등만 터지는 거고 이건 배진영의 추측인데 박우진이 가끔 가다가 달고 오는 상처들이 아버지한테 골프채로 두들겨 맞은 자국이라고 했다. 애새끼들이 떠들어대는 패싸움이니 뭐니 하는 소문의 근원지가 어딘지 당최 모르겠다고.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냐 했더니 자기가 직접 봤단다. 열린 문 사이로 도망쳐 나오던 박우진을. 그리고 그 뒤로 골프채를 들고 쫓아나오려던 한 남자를. 거기까지 정리를 마친 나는 가슴 한 켠이 꽉 막힌 기분에 두 손으로 얼굴을 아예 덮어버렸다. 손가락 틈 사이로 보이는 초승달이 날이 추워서 그런지 구름을 덮은 채 제 빛을 숨기고 있었다. 점점 무거워져가는 눈커풀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아니지, 구름에 가려 제 빛을 못 내고 있는 거지.
나는 배진영을 뒤로한 채 겉옷과 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내 불행을 남과 견주어 봤을 때 솔직히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생사처럼 뭐 사채업자한테 쫓기고, 집이 없고, 쫄쫄 굶고 다니는 그런 목숨이 위태로운 삶까지는 아니었다는 소리다. 허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남의 기준에서였다. 나는 그 누구보다 불행했다.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아버지 사업이 초등학교 때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애들하고 PC방 갈 돈이 없어서 엄마 도와준다는 핑계로 집으로 도망치고 수도가 끊길 때면 새벽에 일어나 삼촌 집에 가서 씻고 등교를 했다. 급식비를 못 내서 한 달 내내 위염인 척 한 적도 많았다. 아마 내 친구들은 내가 금방이라도 쓰러져도 그리 놀라진 않을 거다. 사업을 그나마 정상적으로 살리기까지 꼬박 7년이 걸렸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 입에서 회사의 ‘회’자만 나와도 온 몸의 털이 쭈뼛 섰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버스도 끊긴 시간이라 그런지 춥긴 오질나게 추웠다. 칼바람이 술기운도 저 멀리로 날려버리고 패딩 안을 마구 비집고 들어오는데 몸이 발발 떨렸다. 진짜 이러다 동상으로 뒈지겠다 싶어 택시를 막 부르려던 찰나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대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가 다급하게 뛰어나왔다. 겨울인데 겉옷 하나 걸치지 않은 차림새에 누구한테 쫓겨났나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야, 너 대체...”
“...”
그날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박우진의 눈시울이 붉고 코끝과 귀가 새빨갛게 물들었던 그날.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마저 비슷해 나는 또 한 번 얼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다시금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또 한 번 박우진을 울린 것만 같았다. 그러니 나는 뭐라도 해야 했다. 이 이상한 죄책감을 어떻게 해서든 떨쳐내고 싶었다.
"지금 겨울이야."
"..."
"춥지도 않냐."
꽁꽁 싸매도 몸이 덜덜 떨리는 날씨에 달랑 교복 와이셔츠 하나 걸치고 뛰쳐나올 정도라면 그 이유를 묻기가 무서웠다. 나는 우선 급하게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박우진에게 건넸다. 패딩을 쥐고 있는 손가락은 추위에 땡땡 얼어 감각조차 없었다. 새파랗게 질린 박우진이 제 눈앞에 들이밀어진 패딩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손가락을 쥐었다 피며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 공기에 그대로 노출된 맨살이 따가워질 즈음 내가 직접 박우진에게 다가가 패딩을 어깨에 둘렀다.
야, 존심 세우지 마. 여기 계속 있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어. 진짜 뒈지겠다고. 어디든 빨리 들어가자.
팔까지 친히 들어 패딩을 입혀준 나는 박우진을 끌고 배진영과 오면서 봤던 카페를 되짚으며 걸었다. 박우진도 이 추위에 패딩을 집어던질 재간은 못 되는지 얌전히 끌려왔고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 안으로 대피했다. 따뜻한 공기가 온 몸을 휘감자 그제서야 속 안에서 피가 도는 기분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얼어 뒈지는 게 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박우진은 어찌 그리 얄미운지 들어서자마자 패딩을 벗어서 내게 떠넘기듯 주고는 먼저 자리를 찾아 훽 들어가 버렸다. 싹수없는 새끼.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 듣는 게 이렇게 서러운 줄 몰랐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낯간지럽게 식당도 아니고 카페에서 둘이 마주보고 앉게 됐다. 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테이블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나는 도망치고 싶을 정도의 어색함에 괜히 앞에 놓인 딸기스무디컵만 만지작거렸다. 억겁 같은 시간을 견뎌내느라 혼자 고군분투 하는 와중에 예상치 못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니 오지랖 때문에 하는 얘기는 아닌데, 나 부모 없어. 저 집도 내 집 아니야."
"..."
"나는 진짜인 게 없어."
"..."
"이름도, 집도, 생일도, 부모도."
“...”
“이게 무슨 기분이냐면, 내가 아니라 남의 껍데기 안에서 사는 기분? 나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분. 그래, 뭐 대충 그런 거야."
박우진의 시선이 테이블에 처박힌 채로 올라올 생각을 안 했다. 덤덤한 척하는 목소리는 자꾸만 내 가슴을 쥐어짰다. 나는 푹 숙인 박우진의 동그란 머리통을 바라보며 입술만 잘근잘근 짓씹었다. 해줄 말이 없었다. 저 인생사에 내가 무슨 말로 감히 위로를 하겠는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박우진은 더 나아지는 게 없었다. 주제넘은 꼰대질을 할 바에야 차라리 그냥 듣고만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해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박우진은 되려 주섬주섬 제가 가지고 있는 불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많이 맞았어. 진짜 그 어린 나이에 생각했다니까? 때리려고 날 입양한 건가. 하고. 더 무서운 건 내가 왜 미움 받고 있는지 아직도 몰라. 내가 무슨 짓만 하면 파양해버린다는 고함으로 집안이 뒤집히는데 진짜 나는 그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더라. 요즘이야 대가리가 크니까 하라고 집 나가겠다고 지랄염병 떨어도 어릴 때는 그게 그렇게 무서웠지 뭐...”
“...”
“...”
"오늘은 왜 도망 나온 건데."
"타이밍을 못 맞췄어."
"뭐?"
"딱 30분만 늦게 들어갔어도 안 맞는 건데."
저가 방금 무슨 얘기를 했느냐는 듯 차분한 박우진의 표정 때문인지 그렇게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슬프지는 않았다. 솔직히 나 스스로도 감정변화가 없는 것에 놀라긴 했다. 혹시 모르지. 박우진이 이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렸다면 꼴사납게 같이 울었을지도. 어찌됐건 꽤나 엄청난 비극에도 불구하고 박우진은 태연했고 그 앞에서 당사자도 아닌 내가 운다는 건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니까. 나는 다 녹아버려 밍밍한 딸기스무디만 꽉 막힌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차라리 돈 없이 거지로 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길바닥에서 구걸하더라도,"
"...그건 아닐 걸."
"왜."
"힘들어. 네 생각보다 훨씬 비참한 거야 그거. 돈 없는 거."
"..."
"집에 전기가 나가서 숙제를 못하고, 네 말대로 남의 집 가서 구걸해가면서 머리감고, 교복 살 돈이 없어서 여기저기 전화해서 얻어서 입고."
"..."
"그렇게 살면 또 네 생각이 바뀔지도 몰라.“
“...”
“아, 차라리 전이 더 나았다. 하고."
다 들이킨 스무디의 밍밍한 딸기향이 입 안 가득 텁텁하게 맴돌았다. 박우진의 얼굴이 묘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의도치 않게 남의 불행을 들으면 뭐라 말하기 애매해지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궁금했다.
너도 은연 중에 내 불행을 어림짐작하고 있었는지, 꿈에도 몰랐는지.
내 말을 듣고도 나처럼 그렇게 슬프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지.
아니면 혹시, 어쭙잖은 말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었는지.
그 뒤로 한참을 침묵했다. 우리가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고, 서로에게 나서서 위로해줄 이유도 없으니 당연했다. 서로의 불행이 단순한 말만으로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탓이기도 했다. 컵의 겉면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려 각자의 앞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연한 파장이 계속, 계속해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웅덩이를 말이다. 끝내 긴 시간의 정적을 깬 사람은 박우진이었다.
가자 이제.
자리에서 일어난 박우진이 스치듯 내 눈동자를 바라봤다. 미련이라고는 하나 보이지 않는 발걸음이 손에 닿지 않을 만큼 멀어지기 전에 덥석 팔을 붙잡았다. 아까 그 추위를 맛보고도 또 겁도 없이 천쪼가리 하나로 밖을 나서려기에 두꺼운 패딩을 다시 건넸다. 박우진은 패딩에 깔리듯이 도로 자리에 앉았고 나는 컵을 쟁반에 정리하며 말했다.
"나는 늘 겨울이었어."
"뭐가."
"내 계절은 항상 겨울밖에 없었어.”
"..."
"추워, 좀 많이. 매일이 그랬어. 이기적일 정도로 지독하게 시리고, 아리고..."
"..."
"그래서 너도 그랬으면 했나봐."
"..."
"너도 겨울이었으면 했나봐 내가."
“...”
“미안.”
사실 너를 신경 쓰는 척한 것은 너를 위함이 아닌 나와 같았으면 했던 내 시커먼 이기심이었음을 고백했다. 아마도 처음 그날, 교실 바깥에서 혼자 울던 너를 바라볼 때부터일 것이다. 너를 볼 때마다 들던 꽤나 짙은 죄책감의 이유를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말에 따뜻한 공기 속에서 데워진 패딩을 품 안 가득 안고 있던 박우진은 딱히 이렇다 할만한 반응이 없었다. 그저 방금 전 스쳐지나갔던 시선을 맞추며 느릿하게 입술을 떼었다.
사실 아까 거짓말 좀 했어.
난 아직도 무서워.
파양 당할까봐.
박우진과 헤어진 후 하늘을 보니 신기하게 어느새 달이 구름 밖으로 나와 있었다. 어두컴컴한 골목 사이로 달빛이 한가득한 길을 혼자 걸었다. 마이 하나 걸친 몸이 추위 때문에 감각이 없었지만 어째 아까보다는 괜찮은 것도 같았다. 헤어지기 전 내 패딩을 입고 걸어가던 박우진의 뒷모습이 떠올라 교복 바지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있던 손을 꺼내 핸드폰을 들었다.
- 집 도착했어?
- 아직
- 춥다
- 패딩 내일 줄게
- 너 가져
- 지랄하지 마
별 것도 아닌데 실없는 웃음이 삐져나왔다. 화면을 끄고 다시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었다. 어느새 내려간 입꼬리에서 나온 깊은 한숨이 새하얀 연기를 만들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교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로등 빛이 밝았다. 나는 그 가로등 빛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빛 안으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너무 환했다. 결국 발끝에 걸리는 빛을 뒤로 한 채 최대한 빛이 옅은 쪽으로 돌아서 지나갔다. 계속 나를 따라다니던 의문도 함께.
박우진과 나는 과연 서로의 불행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을까, 정말 아주 잠시라도 서로의 불행을 부러워하지는 않았을까. 생각보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불행도 얼마든지 부러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